아주 늦은 영화 후기를 하나 써보려 한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보고 이야기했던 영화지만, 최근에 다시 보게 된 계기가 조금 특이했다. 얼마 전 중헌제약이라는 회사를 알게 되었는데, 이름을 보는 순간 이상하게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이유는 금방 떠올랐다. 한때 유행했던 말, 바로 “뭣이 중헌디?” 때문이었다. 이 표현의 출처는 다들 알다시피 영화 곡성이다. 영화 속에서 배우 김환희가 외쳤던 “뭣이 중헌디!”라는 대사는 개봉 이후 한동안 유행어처럼 퍼졌다. 발음이 “중헌디”라서인지 ‘중헌제약’이라는 이름을 보는 순간 자연스럽게 그 장면이 떠올랐다.
그래서였다. 문득 그 영화를 다시 보고 싶어졌다.
다시 보니 더 낯설고 더 무서운 영화, ‘곡성’
영화 ‘곡성’ 은 나홍진 감독의 작품이다. 처음 개봉했을 때도 워낙 화제가 되었고, 해석도 수없이 쏟아졌던 영화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 다시 보니 느낌이 조금 달랐다. 처음 볼 때는 단순히 “무섭다”, “기괴하다”는 인상이 강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다시 보니 이 영화는 공포 영화라기보다 의심과 혼란에 관한 이야기에 더 가깝게 느껴졌다. 영화 속 인물들은 계속해서 선택의 기로에 선다. 누구를 믿어야 하는지, 무엇이 진짜인지 판단해야 하는 순간이 계속 등장한다. 하지만 영화는 끝까지 명확한 답을 주지 않는다. 그래서 보는 사람도 같이 흔들린다.
“뭣이 중헌디?”라는 질문.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는 역시 “뭣이 중헌디!” 라는 외침이다.
이 장면은 단순한 유행어 이상의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영화를 다시 보면서 느낀 것은, 이 질문이 사실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질문이라는 점이다.
- 진실이 중요한가?
- 믿음이 중요한가?
- 가족을 지키는 것이 중요한가?
- 아니면 공포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한가?
영화 속 인물들은 계속 선택을 하지만, 그 선택이 옳았는지는 끝까지 확신할 수 없다.
시간이 지나 다시 보게 된 영화 ‘곡성’
개봉 당시에도 많은 사람들이 ‘곡성’ 을 두고 여러 해석을 내놓았다. 종교적 해석, 민속적 해석, 심리적 해석 등 정말 다양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다시 보니, 굳이 정답을 찾지 않아도 되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이 영화의 매력은 명확히 설명되지 않는 불안감에 있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몇 년이 지나 다시 봐도 여전히 낯설고, 여전히 찝찝하다.
뜻밖의 계기로 다시 본 영화. 그 사소한 계기 때문에 오랜만에 영화 ‘곡성’ 을 다시 보게 되었고, 덕분에 예전과는 다른 느낌으로 영화를 볼 수 있었다. 그래서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다. 가끔은 영화 자체보다 그 영화를 다시 보게 만드는 작은 계기들이 더 흥미로운 것 아닐까.
어쨌든 이번에 다시 보며 스스로에게 한 번 더 물어보게 되었다.
“그래서… 뭣이 중헌디? 뭣이 중허냐고?”